2명의 성도로 교회 건축을 한 김병식 목사님/ 안희환발행인

기사입력 2019.10.21 16:46 조회수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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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의 성도로 교회 건축을 한 김병식 목사님/ 안희환발행인

브니엘1.jpg

아산천호교회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브니엘 교회 김병식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아들 신원이가 집회에 참석하셨습니다. 함께 교제를 나누면서 알게 된 것인데 신원이가 제 팬이라고 하시네요. 지금 24살인데 20살 무렵에 제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했고 그때 은혜를 많이 받은 모양입니다. 다른 교회 부흥회에 가자고 하면 잘 안 가는데 제가 강사라고 하니 얼른 따라나서더라고 합니다.

 

신원이는 어릴 때부터 시골교회(수철리교회)에서 목회하시는 아버지를 많이 도왔던 성품이 참 좋은 청년입니다.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 권사님을 집까지 모셔드리거나 할머니들 틈에 앉아서 성경이나 찬송을 못 찾는 할머니들을 대신해서 찾아드리기도 했으니까요. 그런 신원이에게 아픔도 있었더라고요. 자기가 볼 때 무식해 보이는(?) 할머니들에게 늘 저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지는 모습을 보이는 아버지가 무력해보였다고 하네요. 아들 입장에서 아버지가 당하는 것(?) 같은 모습이 마음 아팠던 것 같습니다.

 

김병식 목사님은 그 후 신창교회라는 시골교회로 부임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목회하는 동안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고요. 우선 사모님이 암에 걸려서 간병을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모님은 3년이란 기간 동안 부모님을 모두 잃으시고 충격을 받았고 그 상태에서 교회를 섬기느라 큰 병이 나신 것입니다.

 

그 후 김목사님 역시 몸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명증상이 생겼으며 땅바닥이 올라오거나 벽이 무너져 내리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피부도 건선으로 인해 어려워졌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김목사님이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기도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신창교회에서 사역하는 중에 연로하신 권사님들이 거의 돌아가시고 성도들이 2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을 때 김목사님은 시골에서 시내 쪽으로 이동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열악한 상황 중에 건축까지 시작하였습니다. 1층은 카폐로 사용하고 2층은 예배당으로 사용합니다. 3층에는 주택과 원룸을 만들어서 전세로 내주었고 4층엔 사택, 그리고 5층엔 게스트룸을 만들었습니다.

브니엘2.jpg

김목사님과 함께 교회 구석구석을 둘러보는데 곳곳마다 김목사님의 손때가 묻어있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꾸미고 공사하면서 교회 공간을 아름답게 만든 것입니다. 교회도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고 이제 25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적어서 저를 강사로 부르고 싶은데 못 부른다고 하시기에 숫자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년 10월에 부흥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볼 때 김목사님과 사모님은 오랜 세월 기도에 집중하신 분들이고 교회당도 잘 마련되었고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멤버들도 확보되었으니 브니엘 교회의 미래가 밝게 보입니다. 기대가 됩니다. 귀한 김목사님 부부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제 마음도 뜨겁게 해주었습니다. 김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브니엘 교회 가운데 역사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안희환 기자 neupow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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